
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0. 23 (월)
■ 예레미야 18:1-12
[ 약속의 말씀으로 다시 지어가시는 하나님의 손길 ]
하나님께서는 토기장이의 비유를 통해 유다를 심판하시고 회복하실 수 있는 주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비유의 말씀이 아니라 보고 느끼며 체험할 수 있도록 하신 체험적인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 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1-2).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에서나 혹은 다른 방송 매체나 책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것으로 한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토기장이 집으로 인도하셨듯이, 우리도 수 없이 토기장이의 집으로 인도되어 왔습니다. 즉, 삶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을 보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는 뜻입니다. 병원에서 의학적으로 치료할 수 없다는 판정을 들었던 사람이 하나님을 찾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며 건강을 회복하는 것을 보는 것, 이기적이고 불의했던 사람이 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진정한 하나님의 성결한 백성으로서 거듭나는 것을 보는 것,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헌신하던 사람의 자녀가 상상할 수 없었던 번성을 이루는 것, 사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바로 토기장이의 집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우리는 그러한 일들을 보았고 들었지만 '우연'이나 혹은 '남의 일'만으로 여겨버리기 때문에 그것이 나로하여금 보여주시고 듣게 하셔서 깨닫게 하시려는 토기장이의 집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 분이시라는 것은 단지 성경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에게 능력을 경험케 하신다는 단편적인 의미만은 아닙니다. 도무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자나, 혹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으로 쓰시려는 자를 토기장이의 집과 같이 보고 듣고 깨달을 수 있는 장소로 인도하셔서 하나님만이 주권자이심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입니다. 기독교가 종교가 아니라 생명이라는 사실은 그러한 것들에서도 증거됩니다. 허무한 이상이나 시대에 따라 그 가치관이 변할 수 있는 사상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친히 인도하셔서 나로 하여금 보고 듣고 깨닫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매일 매일의 삶이 하나님의 주권을 깨닫도록 하시는 '토기장의 집'입니다. 섬세하게 볼 수 있는 영적인 눈, 하나님의 손길을 깨달을 수있는 영적인 마음, 탐욕을 버리고 사명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만이 내 삶을 주권적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갑니다(3). 이는 매우 이상하면서도 갑작스러운 명령입니다. 예레미야에게는 한 순간도 한가롭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없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패망을 목전에 두고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의 말씀을 전하므로 한 사람이라도 돌아오도록 촉구해야 하며, 그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의 집으로 가라고 하신 것은 그러한 사역과는 전혀 상관없는 명령처럼 받아들여 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종종 접하곤 합니다. 인간사회에서 일이란 항상 연관성을 갖고 그것은 나의 이익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이익과 관련된 연관성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러한 것들과 전혀 상관없는 곳으로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예를들어, 갑작스러운 이사나 예측하지 못한 실직으로 인한 상황의 변화, 그리고 쉬지 않고 일했던 사람이 갑자기 병이들어 오랫동안 병원치료를 받고 요양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상황을 접하며 "이러한 삶이 내게 무슨 유익이 되는가?"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모든 상황을 나의 이익을 위한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타락한 본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깨닫도록 하시기 위한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러한 상황을 인도하신 까닭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먼저 예레미야와 같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받아들이고 순종할 때에 깨닫도록 하십니다. 이처럼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토기장이가 녹로로 일하는 모습,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자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드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3-4). 그 광경을 보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말씀을 주시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하여 깨닫도록 하십니다. 예레미야는 선지자로서 자신이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과 멸망을 증거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심판으로 인하여 자기 민족이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칼과 창으로 죽임을 당하고 기근과 전염병으로 죽고, 바벨론으로 끌려가 노예생활을 하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생각하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그것이 예레미야 자신의 마음이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임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즉, 능숙한 기술로 물레를 돌리며 아름다운 그릇을 만들었지만, 진흙 속의 작은 티끌이나 이물질로 인해 터진 그릇을 다시 아름다운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토기장이의 모습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유다와 예루살렘을 세워가시려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그 과정에서 토기장이와 같이 하나님은 진노하시기도 하시고 좌절을 겪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해 가며 인내를 가지고 아름다운 백성, 거룩한 나라로 만들어가고 계신 것입니다. 즉, 자기 민족과 나라가 전쟁의 희생물이 되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고통스러워했던 예레미야 선지자의 그 마음이 곧 하나님의 마음임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토기장이는 물레를 돌리며 실패한 그릇을 다시 아름답게 조성합니다. 그릇이 실패했다고 해서 흙을 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 흙이 다시 아름다운 그릇을 만드는 재료가 됩니다. 흙은 곧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이며 말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삶이라는 물레 위에서 약속의 말씀으로 백성의 아름다운 삶을 조성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6). 이는 심판을 통해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있는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단편적인 의미만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행하신 심판이 결국 포기하지 않고 아름다운 그릇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임을 증거하고 계신 것입니다. 흙이 토기장이가 스스로의 마음에 둔 약속에 따라 만들어져 가지 않으면 그릇이라 할 수 없습니다. 토기장이에게 그릇이란 처음 마음에 두었던 약속대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처음 마음에 두었던 용도대로 쓰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토기장이는 만드는 중에라도 그것을 짓이겨 물레 위에서 다시 돌리며 다듬을 것입니다. 토기장이의 마음 속에서 스스로 약속했던 대로 그릇이 만들어져야 비로소 사용될 수 있는 그릇이 되듯이, 하나님께서는 처음 예정하시고 계획하신 대로 인생이 세워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지어져 가지 않을 때에는 "뜻을 돌이키리라"하신 말씀대로 아무리 큰 것이라도 뽑거나 부수어서 다시 처음부터 지어가실 것입니다(7-10).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실행되는 물레는 멈추고 만들던 그릇은 다시 짓이겨져 흙이 될 것입니다.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나의 일상은 중단되고 내가 예상치 못했던 고통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향해 그러한 뜻을 전하도록 하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 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고 외쳤습니다(11). 그러나 유다와 예루살렘은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고 대답할 뿐입니다(12). 이러한 반응은 자신들에게 심판과 저주를 전하는 선지자에 대한 반항이며 분노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 하는대로 내버려 두라"는 것입니다. 선지자가 전하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못하고 사람의 말로만 여기는 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심판 앞에서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오면 뜻을 돌이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기도>
나의 삶이 곧 하나님의 주권을 깨닫게 하며 약속의 말씀을 깨닫도록 하신 토기장이의 집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은 이상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이며, 현실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로 오늘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아름답게 지어 가시는 선택받은 백성이 되었음을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