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0. 25 (수)
■ 예레미야 19:1-13
[ 옹기를 깨뜨리다 ]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토기장이의 집에서 옹기를 사서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서게 하십니다. 그리고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들을 증인삼아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심판의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1-2). 힌놈의 아들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쓰레기를 태우는 곳이었으며, 왕국시대에는 도벳 산당이 있었던 곳으로서 이곳에서 바알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몰렉에게 희생제사를 드렸던 곳입니다(왕하23:10). 이곳에서는 인신제사나 쓰레기를 태우기 위한 불이 치솟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곳은 곧 "항상 꺼지지 않는 뜨거운 불못"이라는 지옥의 이미지를 가진 곳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곳에 서서 "너희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주민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고 선포합니다(3). 지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서서 백성의 지도자들을 증인 삼아 하나님의 심판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이 지옥이 될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한 심판의 선언은 곧 그들 스스로 조장하고 방관하고 주도한 우상숭배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똑똑히 보고 듣게 하시고, 우상에게 희생재물을 드렸던 그 장소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함으로서 손으로 깎아 만든 우상들의 허무함을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토기장이의 집에서 옹기를 사오도록 하시고 심판을 선언하게 하신 후에 그 옹기를 깨뜨리도록 하신 것은 옹기로 상징하는 유다가 깨짐같이 그들 나라와 민족이 깨어져 흩어지게 될 것임을 증거삼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토기장이의 물레에 올려진 토기는 잘못 만들어지면 어그러뜨려 다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옹기는 유약을 바르고 물에 구운 것으로 잘못 만들어졌다해서 다시 물레에 올려 만들 수 없으며 깨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치료와 용서의 손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을 위해 일하지 않으시고 심판을 통해 다스릴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깨뜨린다는 것이 영원한 멸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회복은 이전의 것을 새롭게 고치신 것이 아니라 새창조의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를 통해 죄사함을 얻도록 하신 것 또한, 이전의 나를 고치신 것이 아니라 죄인이었던 나는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새로운 생명이 되도록 지으신 것입니다.
오늘 내 삶 속에서도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예배를 드리지만 여전히 습관처럼 동일한 죄악을 행하던 곳, 그곳이 바로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입니다. 오늘 내 삶의 자리에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을 만한 우상숭배의 요소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신을 죽이려고 모략을 꾸미는 백성의 지도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합니다. 유다는 조상들처럼 바알 숭배뿐만 아니라 조상들도 알지 못하는 여러 종류의 이방 신상들을 들여와 분향하며 섬겼습니다(4). 또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습니다(5). 오늘날에도 이처럼 바알을 섬기며 아들들을 제물로 주는 경우는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풍요를 추구하며 아들들에게 그 풍요를 물려주었지만, 그 풍요로 인해 아들들의 삶이 폐허가 된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버린 종교적 범죄는 가정을 깨뜨릴 뿐만 아니라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사회적 범죄를 낳게 되었습니다. 아낌없이 사랑하고 필요한 모든 것을 선물로 제공하고 지켜주신 하나님을 저버리고, 자신들을 노예로 삼고 자식과 이웃을 등지게 하며 자기 자신의 삶까지도 파탄나게 한 우상에게 철저히 복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므로 보라 다시는 이 곳을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죽임의 골짜기라 부르는 날이 이를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6). 우상숭배와 패역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가 죽음의 골짜기로 불릴 만큼 처절한 심판의 장소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들의 시신은 짐승의 먹이가 되게 하실 것이고, 자식을 제물로 바친 이들에게 자식과 친구의 시신을 탐할 정도로 굶주리는 비참한 공격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 이와같은 하나님의 심판을 감당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유다가 아무리 스스로 살 길을 계획하여도 하나님께서 그 계획을 무너뜨려 엎드러지게 할 것이며, 들 짐승들의 밥이 되게 할 뿐만아니라 모든 자들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는 너무도 비극적으로 처참한 심판입니다. 대적들이 예루살렘성을 둘러싸고, 더 이상 먹을 식량이 없어서 서로의 자식을 먹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7-9). 하나님은 잔인한 분이 아닙니다. 이러한 말씀이 심판이 행해지기 전에 선포되었다는 것은 잔인함이 아니라 반드시 죄에서 돌이켜야 한다는 강력한 경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두렵고 떨린 말씀을 받는 것을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죄에서 돌이켜 심판의 고통을 당하게 하지 않게 하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인도하심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두렵고 무서운 심판의 말씀을 선포한 후에 옹기를 백성의 지도자들이 보는 앞에서 깨뜨립니다(10). 그리고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개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하게 할수 없는 것같이, 유다와 예루살렘에 심판의 시행과 함께 모든 성읍이 무너지고 시체를 매장할 자리가 없을 정도가 될 것을 선포합니다(11). 옹기를 깨뜨린 것은, 아무리 선지자를 통해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듣지 않으려하고 믿지 않으려 할뿐만 아니라, 오히려 선지자를 죽이려 했던 유다에게 더 이상 하나님의 심판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유다는 치유될 수 없을 만큼 병이 깊었지만, 그 사실을 몰랐고 가르쳐줘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고 싶지도 않았고, 할 줄도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백성의 지도자들 앞에서 유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옹기를 깨뜨린 행위는 가장 적극적이고 참혹한 방법으로 심판을 선언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기존의 옹기가 지니던 모양과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는 것이며 쓸모없는 것이 되어 밟히는 부스러기가 될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택함을 얻은 백성으로서 근원적 사명을 상실한 자들에 대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5:13). 한편, 하나님께서는 "이 성읍으로 도벳 같게 할 것이라"고 선언하시고, 또 반복적으로 "도벳 땅처럼 되리라"고 하십니다(13). 도벳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 몰렉에게 인신제사를 드리도록 마련된 사당으로서, 한 때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 때에는 이곳에서 인신제사를 드리는 것을 금하였지만, 이후 다시 인신제사가 성행하게 되었던 곳입니다(왕하23:10). 그러므로 바알과 몰렉 숭배의 중심지였으며, 아하스와 므낫세는 이곳에서 자기 아들을 불태워 몰렉에게 제사를 드렸습니다(대하28:3, 33:6). 그러므로 유다와 예루살렘이 도벳 같게 되며 도벳의 땅과 같이 되게 하시리라는 말씀은, 우상숭배와 음행으로 타락했으면서도 끝내 회개하지 않는 그들의 땅이 지속적으로 불타 오르고 죽음이 가득한 땅이 될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인지 세상사람인지 구분할 수없는 언행과 상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마지막까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말씀을 받으면 찔림을 받을 수있는 신앙양심입니다. 그것이 회복의 전조가 될것입니다.
<나의 기도>
하나님, 이 악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모양과 기능을 상실하지 않게 하시고, 범사에 말씀을 따라 행하며 모든 지경마다 복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