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원의 아침묵상 / 2017. 8. 6 (주일)
■ 민수기 26:52-65
[ 약속의 성취로 주신 가나안 땅 ]
시내 광야에서 계수되었던 이스라엘 자손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 한 사람도 남지 않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64-65).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통해 이어져 갑니다. 그것은 가나안 땅의 분배로 현실화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 명수대로 땅을 나눠주어 기업을 삼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53).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땅 분배를 명령하신 것은, 이방나라와 같이 권세를 가진 자가 더욱 더 많은 땅을 소유하며 부를 누리고 이웃들을 노예나 소작농으로 삼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특히, 레위기에서는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이스라엘 백성을 영원히 지배하고 노예로 삼지 못하도록 언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갈지라"고 말씀하시며, 희년이 되는 오십 년째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빚도 탕감받게 하셨으며, 빚으로 인해 얻은 소유물에 대하여서도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 주도록 하셨습니다(레25:13). 물론, 희년이 되기까지는 원래의 주인이 빚으로 인해 소유권을 넘겨 줄 수도 있었고, 경제적인 이유로 자원하여 하인이 되는 일이 있었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노예제도와 같이 사람이 사람을 소유하는 것을 인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종이 되었을 지라도 희년에는 모두 속량이 되도록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사람을 근본적으로 소유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그들을 너희 후손에게 기업으로 주어 소유가 되게 할 것이라 이방인 중에서는 너희가 영원한 종을 삼으려니와 너희 동족 이스라엘 자손은 너희가 피차 엄하게 부리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종이 된 자라도 가혹하게 부리지 말것을 명령하셨습니다(레25:46). 이방인의 경우에는 영원한 종으로 삼아도 됨을 허용하셨는데, 이들은 주로 전쟁에서 포로로 잡은 자들로 죄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경우 빈곤해져서 같은 동족의 종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빈곤의 책임을 물으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무고한 민족을 전쟁을 통해 심판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앞에 패역하고 이스라엘을 괴롭힌 민족을 전쟁을 통해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전쟁에 패했다는 것은 곧 하나님 앞에 범죄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스라엘 백성의 경우 빈곤하다는 것은 곧 일정한 땅을 분배받은 자로서 불성실하거나 관리에 소홀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이 명수대로 땅을 나눠 주어 기업을 삼게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받도록 하신 것이며, 그 누구도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에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적게 받고 적게 누리며 때로는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은혜에 대하여 그 누구도 제외시키지 않으시고 차별을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을 분배하는 데에 있어 몇가지 원칙을 말씀하십니다. 첫째, 많은 지파에게는 많게 적은 지파에게는 적게 분배하도록 하십니다. 이는 한 지파가 세력이 성장함에 따라 다른 지파의 기업을 침해하거나 혹은 이웃의 것을 빼앗는 일이 없도록 하신 것으로, 모두에게 일정한 분량을 배분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잠23:10). 옛 지계석이란 하나님께서 각 지파에게 주신 기업의 경계를 침해하지 말도록 하신 것입니다. 둘째,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누게 하셨습니다(55). 공의란 많이 노력하는 자에게는 많이 주어지고 게으른 자에게는 있는 것 까지 빼앗기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일 것입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볼 때에, 각 지파에 따라 광야생활 중에, 혹은 가나안 정복전쟁 중에 다른 지파나 다른 이웃보다 더 큰 수고와 희생을 치른 사람이 더 많이 갖는 것이 당연한 논리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일에 이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일정하게 나눠주어 기업을 삼게 하신 것은, 약속의 땅이 이스라엘의 힘과 노력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약속의 성취"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분배 과정에서 제비를 뽑도록 한 것도 사람의 뜻과 탐욕이 개입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셋째, 조상 지파의 이름을 따라 얻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가나안 땅을 분배받는 것이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이처럼 기업의 분배는 강한 사람이 결정권을 갖는 세상의 논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값없이 선물로 주시는 은혜의 원리라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파종할 수 없는 광야에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부족했던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주신 만나를 통해 생존하게 하셨듯이, 약속의 땅도 주권적으로 주신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을 모든 백성들이 의지해야 할 것은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땅을 부의 원천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모든 부의 원천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만이 인생의 정답임을 확신하며 살아갈 때에 더욱더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개인의 삶을 살찌우고 풍성하게 누리는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세우고 하나님의 통치로 성결하고 거룩한 나라를 이루어가는 사명의 공간이었습니다. 육체의 이스라엘이 실패하고 모든 나라와 민족들의 노예로 전락하고 흩어지게 된 것은 약속의 땅을 물리적인 공간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땅의 면적에 대하여는 각 지파의 인구 수에 비례하여, 그리고 땅의 위치에 대하여는 각 지파가 제비뽑게 하므로서 가나안 땅이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주신 것임을 분명히 했으며, 땅의 분배는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이며 동시에 새로운 세대를 향한 사명의 시작임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레위인은 땅을 분배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기업이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레위자손은 땅 분배를 위한 계수에는 들지 못하였습니다(6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개월 이상으로 계수된 레위인의 모든 남자는 이만 삼천명이었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땅 분배를 위한 계수에는 들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어 가는 일에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레위인까지도 "계수된 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편, 이스라엘 각 지파의 계수에 대하여는 "이십 세 이상으로 능히 전쟁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고 하신 반면, 레위지파에 대하여는 "일 개월 이상으로" 계수하게 하신 것은, 레위인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모든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성막봉사를 맡았으며 이를 위해 일 개월 이상 된 모든 레위인들이 속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3:40-51).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시내광야에서 계수한 자는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소개는 그들의 특별함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은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가데스에서 원망하고 불평하며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던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대비시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데스에서의 사건 이후 모세를 통해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14:29-30). 그러므로 전 세대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만이 완전히 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는 광야를 보면 절망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온전히 뜻을 세워가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한 자는 믿음의 확신을 갖고 약속의 성취를 보게 될 것입니다.
<나의 기도>
땅의 분배를 통해 그 누구도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제외되지 않았으며 공의로운 뜻이 있음을 믿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를 바라보며 탄식하기 보다는 오늘도 내 인생을 통해 뜻을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