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원의 아침묵상 / 2017. 9. 12 (화)
■ 예레미야 1:1-10
[ 소명을 주시고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다 ]
예레미야는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가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과 구원의 말씀을 기록한 책입니다(1). 예레미야는 소명을 받은 선지자로서 타락한 유다와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다가 모진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부르신 때는 이스라엘 역사상 격변의 시기였습니다. 그가 선지자로서 활동하던 시기는 내적으로는 부패와 타락이 극에 달했었고 외적으로는 나라와 민족이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가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시드기야의 십일년 말까지 곧 오월에 예루살렘이 사로 잡혀 가기까지 임하니라"고 그의 선지자로서의 활동시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3). 그는 이처럼 요시야 왕 때에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사십 년간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인 예레미야를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가 다스린지 십삼년에 부르셨습니다(2). 예레미야의 출신을 밝힌 것은 출신에 제한을 두지 않으시고 한량없는 은혜로 부르시고 세우신 자를 통하여 그 목적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이심을 증거합니다. 예레미야는 정치적으로는 역적의 후손이었습니다. 엘리 가문의 마지막 제사장이었던 아비아달은 다윗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아도니야를 옹립하려고 했다가 솔로몬에 의해 아나돗으로 추방되었습니다(왕상2:26). 그러므로, "아나돗의 제사장들"이란 그의 후손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한 말씀의 대언자로 예레미야를 부르셨고, 그는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출신이나 혈통 자격 등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직 명령에 순종할 자"를 택하시고 부르셨으며 사명을 주셔서 감당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는 모든 권위가 사람으로 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임을 증거합니다. 한편, 요시아 왕은 타락과 부패가 극에 달했던 유다에서 종교개혁을 통해 신앙회복을 꾀하였던 왕이었습니다. 성경은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라고 그의 치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왕하23:25). 그러나 이스라엘의 타락은 요시야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후에 더욱더 극에 달하게 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러한 이스라엘을 향해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회개를 촉구하지만 그에게 돌아 온 것은 오해와 외로움과 고통뿐이었습니다. 사명자의 길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길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입니다. 이것을 잊어버리는 순간 사명자의 길은 굽게 됩니다.
예루살렘이 사로잡혀 갔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상숭배와 음행이 극에 달하여 순결성을 잃고 심판을 받아 바벨론으로 끌려가 칠십 년간 포로생활에 접어 들때까지를 말한 것입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다시 하나님의 성결한 백성으로 돌아 올 것을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심판을 피하지 못하고 자신의 민족이 죽임을 당하고 처참하게 벌겨벗겨진 채 포로로 사로잡혀가는 것을 보아야 했던 예레미야의 삶은 모두가 꿈꾸는 인생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인생은 자신이 살고 싶은 시대도 선택할 수 없을 뿐더러 살고 싶은 환경도 스스로 조성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주권적인 역사는 시대와 상황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때에 목적에 따라 일방적으로 보내지는 것이며, 그 부르심을 우리는 소명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은 그가 모태에 있기 전에부터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있었습니다(5).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가 모태에 있기 전부터 그의 삶을 예정하시고 선지자로 구별하여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와같이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오늘 내가 살고 있는 나라, 내가 직면한 모든 상황과 조건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소명을 통해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인생이 그냥왔다가 그냥가는 삶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실행된 것이며, 정하신 목적 안에서 사명을 부여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존귀하고 가치있는 인생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뿐만 아니라 택함을 얻은 우리 또한, 하나님의 예정하심과 목적하심의 중간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가 어떻게 왔고 어디로 가는 인생인지를 깨닫지 못한다면, 대다수의 사람들과 같이 먹고 마시며 시집가고 장가가며 쾌락을 쫓아가는 인생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여러나라의 선지자"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인생들 속에서 지켜보시다가 훌륭한 인생을 택하여 세우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의 삶을 예정하시고 그 예정가운데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이끄신 것입니다. 예레미야로서는 두렵고 떨린 일이었습니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6). 지금 내가 직면한 상황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인도하시는 길 위에 있는 것임을 인정할 때에 승리의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반드시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인생으로 목적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두렵고 떨린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게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7).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예레미야의 능력이나 출신을 보시고 그를 부르시지 않았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하나님께 보냄을 받은 자, 즉 소명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으로 가며,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철저히 하나님 앞에 정직한 일꾼으로서 사명을 감당할 때에 함께 하시고 지켜주실 것임을 약속하십니다(8).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약속에 신실하시고 바뀌어지지 않을 진리로서의 하나님의 약속인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은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실제로 예레미야는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던져지는 등 많은 위험에 직면했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한다고 하여서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예레미야와 같이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고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인도하심과 구원하심에 대한 확신을 잃지 않도록 함께하시고 붙들어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명이란 넓은 범주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가는 모든 삶의 형태, 모든 삶의 문제들이 곧 사명을 감당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사명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내가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쉽게 좌절합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 시작되는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예레미야의 입에 대시고 해야 할 말을 그의 입에 두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9). 하나님의 보호와 약속이 고난이나 위험이나 심지어 죽음의 가능성까지도 피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을 이길 힘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나라에 대한 심판과 구원은 그 누구의 삶을 통해서도 아닌 온전히 예레미야에게 주신 사명을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10). 파괴하고 파멸하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이며 건설하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 주권적인 역사가 예레미야의 사명을 통해 이루지듯, 오늘 사명을 받은 나의 인생을 통해 목적하신 뜻을 다 이루실 것입니다. 그 부름 앞에 엎드리고 주신 사명 앞에 순종할 때에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나의 기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시고, 그 부르심이 이미 하나님의 철저한 예정가운데 이었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부르심을 따라 주신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하게 하시고, 온전히 내 인생을 통해 목적하신 것을 이룰 수 있는 영광스러운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