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원의 아침묵상 / 2017. 9. 14 (목)
■ 예레미야 2:1-8
[ 헛된 것을 따라 헛된 것을 행하는 자여 ]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위한 성물 곧 그의 소산 중 첫 열매이니 그를 삼키는 자면 모두 벌을 받아 재앙이 그들에게 닥치리라"하고 이스라엘에게 전하도록 하십니다(1-3). 아무런 조건없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광야로 인도하셔서 거룩하고 성결한 백성으로 언약을 맺어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백성 삼으시고 베푸신 구원과 은혜는 아무런 대가나 조건을 요구하지 않는 순전한 사랑이었습니다. 모든 조건과 배경을 따지지 않고 오직 사랑하나로 배우자로 택하고 서로 행복하게 살던 신혼때와 같은 시절을 그리워하십니다. 이는 마치 집을 나간 신부를 향한 간절한 사랑의 호소같은 말씀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힘입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어도 행복하고, 서로가 서로를 마주보기만 해도 마냥 즐거운 시절이 신혼의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씨 뿌리지 못하는 땅, 아무것도 거둘 수도 없는 땅에서도 신부된 이스라엘과 나누던 사랑을 기억하시며, 풍요 속에서 타락하고 신랑을 배반하고 돌아선 것을 마음아파 하십니다. 광야와 같은 척박한 환경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로막지 못했고, 오히려 광야의 척박한 환경은 신랑되신 하나님의 진실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체험하고 확신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행복은 풍요 속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고 만나 아무것도 없어도 서로 진실한 사랑만을 확인할 수 있다면 매일매일이 행복할 수 있듯이, 변치 않으시는 사랑으로 부어주시는 신랑되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다만, 그 분을 사랑할 때에 지금의 내 환경과 조건을 초월한 행복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토록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서로 사랑하며 함께 한 시간이 있었는데, 지금의 풍족함으로 인해 오히려 신랑되신 하나님을 배반한 것을 한탄하신 것입니다. 첫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었을 때에, 혹은 모든 것을 잃어 버렸을 때에도 한결같은 사랑을 부어주셨던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눈물로 찬송하고 감사하였던 시절을 기억하는 것은 복되고 귀한 일입니다. 과거는 오늘 내 자신의 인생을 확인 할 수 있는 거울입니다. 지난날 나와 함게 하셨던 하나님의 인애를 기억하며 지금의 내 모습을 돌아보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 이스라엘은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지고 귀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저버리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으며 결코 신부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오히려 자신의 쾌락과 욕심을 위해서 사랑하는 신랑을 버린 여인과 같았습니다. "너만이 나의 최고의 가치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외면하고 배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성물 곧 그의 소산 중 첫 열매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무도 넘볼 수 없는 하나님만의 가치이며 소유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은 결코 그 누구도 넘보아서는 안 되며, 또한 다른 사람을 품어서는 안 될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입니다. 성물과 첫 열매는 아무도 탐할 수 없는 하나님의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제사장과 그 직계 가족들만이 먹을 수 있었으며, 그것을 어기면 재앙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3). '성물'이라는 것은 거룩한 목적으로만 사용되도록 구별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수확의 첫 소산역시 모두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되어야 했습니다(출23:19). 하나님께 이스라엘은 "유일한 선택"이었으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많은 것들 중의 하나"에 불과했으며, 그 중에 가장 사랑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영존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의 신부가 되었다는 것은 은혜이면서도 특권입니다. 일반적으로 신부의 지위가 신랑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결정되듯, 하나님의 성결한 신부가 된다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은혜이며 특권을 입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받은 특권을 알지도 못했고 그것을 누리지도 못했으며 스스로 가치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삼키는 자면 모두 벌을 받아 재앙이 그들에게 닥치리라"고 말씀하십니다(3).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신부된 이스라엘을 넘볼 수 없으며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당시 이미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되었고, 그 백성들도 포로로 붙잡혀 갔습니다. 또한, 남 유다도 이후에 북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숭배와 음행에 빠져 배도의 길을 갔었습니다. 특히 므낫세와 왕때에는 그 죄악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넘보는 자에게 재앙을 경고하신 것은, 결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조상들이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기에 나를 멀리 하고 가서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고 책망하십니다(5).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헛된 것을 쫓다가 결국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헛된 거품과 같이 광야에서 사라지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도 그와같이 헛된 인생이 되려느냐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가나안에 들어온 자들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의 풍요로움 인해 마음이 변하였고, 가나안 땅의 여인들과 음행하며 그들의 우상을 섬기며 죄악을 행했습니다. 살 만한 환경과 조건이 되자 죽음 같은 광야에서 길을 인도하시고 생명을 지켜 주셨던 하나님을 더 이상 찾지도 않고 구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택한 것은 "자기 만족"이었습니다. 자기 만족을 위해서 가나안 여인들을 취했으며, 자기의 입맛에 맞는 신을 만들고 그 신상 앞에 절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그늘진 땅, 사람이 그 곳으로 다니지 아니하고 그 곳에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우리가 통과하게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고 말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책망하십니다(6). 어려운 시절 오직 택한 사람만을 사랑하며 희생했던 남편을 버리고, 더 이상 찾지 않는 신부된 이스라엘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헌신적이고 희생적이었으나 이스라엘의 사랑은 가증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내 삶에 하나님의 존재가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만큼, 찾지 않아도 찾을 필요도 없는 존재가 되었다면 나는 그토록 희생하며 나만을 사랑해 주었던 신랑을 버린 가증한 신부가 된 것입니다. 기름진 땅도 그 땅에서 나는 풍성한 열매도 그 아름다운 것들도 모두 자기만족을 위해서 쓰는 더러운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7). 더 이상 이스라엘의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어디에 계시냐는 말도 하지 않았으며 율법을 다루는 자들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반역하였으며, 선지자들도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헛되고 무익한 것들을 쫓아 갔습니다(8). 이스라엘의 타락과 부패에 지도자들의 책임이 너무도 크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동성애에나 황금만능주의로 타락한 세상은, 모두 거룩하고 성결한 삶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의 책임입니다. 그것을 통감하지 못한다면 성도로서,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그들과 같이 헛된 것을 쫓아가는 삶이 된 것입니다. 내 귀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릴 때에 믿음으로 받고 돌이키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기도>
하나님, 외치는 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옵소서. 부패하고 타락한 세상 속에서 그렇게 사는 것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악함을 떨쳐 버리고, 나의 신랑되신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을 회복하는 은혜가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