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원의 아침묵상 / 2017. 9. 7 (목)
■ 디모데전서 4:1-16
[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에서 성도들을 미혹하였던 이단인 금욕주의에 대하여 경고하며 주의하라고 합니다. 금욕주의자들은 육체적인 것, 즉 물질적인 것은 악하고 정신적인 것은 선하게 여겼던 자들로 혼인이나 특정한 음식에 대해서 부정하게 여겼습니다(3). 이러한 금욕주의가 후에 영지주의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육체적인 것을 무조건 악하다고 생각하여 부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 보시기에 놓았더라”(창1)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 안에서 이러한 금욕주의에 미혹된 성도가 없도록 경계하는 것입니다. 경건은 금욕에 따른 모양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진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강조하고 있습니다(5).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무조건 악하다고 정죄하거나 혹은, 금욕적인 것만을 보고 그 사람이 매우 영적인 사람이라고 무조건적으로 맹신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를 바르게 전달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가 나의 삶을 거룩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이단의 유혹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견고히 설 수 있는 능력인 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바른 진리를 전하지 않는 사람들을 “믿음에서 떠나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2). ‘화인’ 맞았다는 것은 불로 달군 인두로 도장을 찍힘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노예 매매 시에 주인이 노예의 몸에 불로 달군 인두로 도장을 찍어서 소유를 구분하는 방법으로서 거짓말하는 자들이 마귀의 종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인두로 도장을 받은 부위는 처음에는 뜨겁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프지만 차츰차츰 굳은살로 변하여 나중에는 감각조차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따라서 처음 하나님 앞에 악한 행동을 할 때에는 아프고 힘들지만 반복할수록 무디어져서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양심에 화인 맞은 상태라고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경건의 모양만 있을 뿐 실제적인 믿음에 의한 경건은 없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속에는 믿음이 없으면서도 금욕적인 모양으로 믿음이 있음을 드러내려는 것은 외식이요 죄악입니다. 물론, 금욕이 모두 외식적인 것은 아닙니다. 믿음 안에서 자신의 욕심과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스스로 절제하려는 금욕은 유익이 있습니다(8). 그러나 남에게 보이려는 금욕은 오히려 악한 행동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단의 거짓에 미혹 받지 말고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을 믿음으로 받고 감사함으로 취하라고 말합니다(4).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비단 음식에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모든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도 감사함으로 받으면 그것이 오히려 내 삶에 양약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약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함으로 받지 못하고 더욱더 욕심을 내고 불평을 하게 됩니다(롬13:14). 하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 거룩하고 감사함으로 받으면 모든 것이 내게 유익이 된다는 것을 깨달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으로 양육될 수 있으며, 삶을 통해 경건을 이루어가는 은혜가 있게 됩니다(7). 바울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고 말합니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경건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 중심이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경건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깨닫는데서 오는 경건함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영원한 내생에서 영향을 미치는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따를만한 것입니다(9).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세상의 허망한 것들을 좇지 않고 영원한 나라를 준비하는 사람으로 끊임없이 스스로 경건에 이르는 훈련에 힘쓰기를 소망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고 권면합니다(11).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업신여기지 못하도록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라고 합니다(12). 유대의 관습상 연소함이라는 것은 40세 미만의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것은 어린아이와 같이 나이가 적은 것을 말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연소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의 절제된 언행과 믿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받을만한 이유가 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가장 먼저 금생과 내생에 유익을 줄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으로 경건에 이를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11).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한 말은 바른 진리를 전하는 것이 꼭 입술로만 가르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언행과 사랑으로 하는 총체적인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고 말합니다(13). 지도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은 영적인 생명을 유지하는 호흡기와 같은 것이며, 권하는 것은 반드시 행하여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이며,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을 잇기 위한 세대적인 과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의 권위는 세상적인 힘과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 속에서 나오며 말씀에 의한 권위만이 세상의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마음으로 순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것으로 세상을 순복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이어야만 가능합니다. 나는 복음을 맡은 지도자로서 세상적인 것에 마음을 뺏기고, 세상적인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려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영적인 권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얻을 수 있음을 믿습니다. 또한, 지도자는 세움 받을 때의 마음을 잊지 않고 전심전력하여 성숙함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야 합니다(15). 가르치는 일은 입술로만이 아니라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서 전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는 것은 그러한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16). 자신이 가르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고, 또한 철저히 점검하고 확신에 의해서 가르쳐야 하며, 그것이 또한,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내 자신과 나의 삶을 세워가는 가르침도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으며 생명력이 있습니다. 내가 올바른 진리를 전하는 일에 전념한다면 공동체는 살아나고 세워질 것입니다. 그러한 확신 가운데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사역을 충성되고 성실하게 감당해야 할 것을 믿습니다.
<나의 기도>
하나님, 매일매일 경건에 이르는 훈련에 게으르지 않도록 인도하옵시고 말씀과 기도로 나의 삶을 무장하게 하시고 어떤 이단의 미혹과 외부적인 세력에게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강한과 담대함을 주옵소서. 세상에서의 스펙보다는 올바른 진리를 전하고 있는지를 늘 점검하고 노력하게 하옵시고 공동체 안에서 늘 지도자로서 믿음의 성숙함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