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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by jazzsno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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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zzsnobs ·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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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running.jpg](https://cdn.steemitimages.com/DQma9byqptBeHzFtDdMbERV9MYDXdo65HHsEL1tQsCRrfZj/running.jpg)
<br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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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br />스물 세 살에 베이스를 처음 치기 시작했으니 늦어도 단단히 늦은 셈이다. 가끔씩 스무 살 쯤에 베이스를 치기 시작했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다른 악기를 하다가 베이스로 바꾼 경우다. 나도 십대에는 기타를, 이십대 초반에는 피아노를 조금씩 쳤지만 푹 빠져있던 취미생활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 음악이 업이 되리라고는 내 스스로도 믿지 않았다, 매일 밤 상상은 했을지언정.

  피아노를 훨씬 더 좋아했었다. 스무 살 언저리쯤, 김현철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 게스트로 나온 재즈 피아니스트가 “재즈 피아노를 하려면 클래식도 많이 쳐야 하나요?” 하는 질문에 “아뇨, 클래식은 체르니 30번 정도만 치면 돼요.”라고 답하는 걸 들었다(지금의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어떤 의미로 한 말인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은 나는 바이엘 하권부터 치기 시작했고 체르니 100번을 거쳐 30번에 도달하는 데에 이삼 년이 걸렸다. 매일 저녁 시간이면 다니던 동네 교회로 가 빈 성가대 연습실을 찾아 피아노 연습을 했다. 하루에 서너 시간씩. 다음날 학교에서는 줄창 엎드려 잠을 잤다.

  어찌어찌하면 체르니 30번이야 끝마칠 수 있었겠지. 하지만 안 될 것 같았다. 세상에는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나는 고작 체르니 30번을 가지고 낑낑대는 중이었다. 즉흥연주는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12번 곡을 치고 13번 곡을 연습하다가 ‘체르니는 이제 그만!’ 하고 덮어버렸다. 재즈 피아니스트, 내겐 가능한 꿈이 아니었다.

  피아노가 아니면 뭐라도 상관없었다. 드럼을 조금 쳐 보니 이건 정말 내 악기가 아니란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베이스, 이건 어릴때 기타를 치던 게 있어서 좀 친숙한 느낌이었다. 싸구려 악기를 하나 구해 연습을 해 보니 할 만 하다 싶었다. 주변에선 베이스를 치면 최소한 굶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거면 됐다. 무슨 악기든 상관없지, 음악만 할 수 있다면(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지긴 했다).

  한동안은 숨가쁘게 성장했다. 학습능력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고,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도 강했으니까. 재능은 뭐, 처음 시작할 때는 제법 재능이 있는 편이라 믿었지만 그건 동호회에서 축구공 좀 차는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음악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 중에서 나보다도 재능이 없는 사람은 드물었다. 하지만 재즈를 연주하는 이들이 별로 없어서 조금만 연습을 하고 나면 이내 연주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적당히 운이 따르는 시절이었다. 남들보다 십 년 늦게 시작했다면 십 년 뒤에 성취하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 다다르자 영원히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시절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워낙에 하루키를 좋아했었기에 하나하나 그의 소설을 순서대로 쫓아가며 반복해서 읽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4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 <댄스댄스댄스>....물론 <상실의 시대>는 훨씬 이전에 읽었지만 그때는 오히려 감흥이 없었다. 30대에 이르러 갑자기 그의 소설에 그야말로 꽂혀버린 뒤로 몇 년 간 하루키의 모든 소설을 읽고 또 읽었다. <해변의 카프카>만 빼고 -그건 이상하게도 읽히지 않았다-. <스푸트니크의 연인>, <도쿄기담집>, <태엽감는 새>,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 <중국행 슬로보트>,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Q84>, <색채를 잃은 다자키 스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기사단장 죽이기>......

  소설 이외의 에세이도 거진 다 읽었다. 출판사들이 바뀌며 중복되는 책들도 있고 중간중간 누락되는 것도 있으니  다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루키의 에세이들은 워낙에 슥슥 읽히는데, 읽다보면 중간중간 피식하고 웃고 있거나 나도 모르게 아하 혹은 흐음, 하는 감탄사를 내곤 한다.

  그런데 이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는 조금 달랐다. 무겁지 않은 진지함이 있었다. 다른 에세이들이 종종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유머러스한 표현을 집어넣곤 했는데, 이 책에서는 서문에서만 잠시 조크를 던지고 만다.

  4장에 가면 불쑥 마음에 비수를 꽂는다. 작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으로. 그는 첫 번째 자질은 두말할 나위 없이 재능이라고 못박는다. 이는 전제 조건에 가깝다고. 나는 음악을 할 전제 조건을 갖추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심장이 뚜욱, 하는 소리를 내며 몇 센티미터 정도 떨어진다. 도대체 어느정도의 재능을 가진 이라면 저 이야기를 읽으며 끄덕끄덕, 과연 그런거였지, 저 양반이 뭘 좀 아는데, 하며 태연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러나 재능의 양과 질을 개인이 어찌할 수 없다는 건 하루키도 안다. 그리고는 집중력과 지속력을 나머지의 자질로 꼽는다. 자신 역시 재능이 부족한 사람이라 집중력과 지속력을 가다듬으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다는 얘기를 한다(재능 부분은 동의하기 어렵고 한걸음씩 나아간다는 건 동의한다).

  그렇게 계속 파내려가다보면 언젠가 땅 속 깊이 숨어있던 재능을 발견하게 되는 때도 있다고 했다. 어쩌면 그게 내가 꿈꿀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딱히 눈에 보이는 재능이 없다는 것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오십이 될 때까지 계속 땅을 판다면, 저 아래 어딘가에 무언가 파묻혀 있던 것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만약 다 파내려갔는데 아무것도 없다면 어떻게 할까. 지독히도 성실하게 땅을 파고 난 뒤 아, 여기엔 금맥이 없었군, 하지만 이쯤하면 좋은 인생이었지, 하며 바지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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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에 있는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이라는 문장을 좋아합니다. 역자는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라는 의미라고 번역했지만 그 번역은 딱히 마음에 들지 않구요. 저라면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괴로워하는 것은 선택하기에 달렸다'라고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책 한 권을 번역하는 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지만요. 

>그리고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책의 맨 마지막입니다. <br /><br />...(중략)...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br /><br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br /><br /> 이것이 지금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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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chung · (edited)
수많은 인생중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그대로 하고  있는 사람도 흔하지 않은것 같습니다. 찾았다고 하더라도 재능, 명예, 돈이라는 것이 함께 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지요.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

결국에는 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가짐으로 귀결되는군요. 自足하는 삶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누구도 제 마음을 대신해줄 수 없기  때문이겠죠. 참 좋은 구절이네요. 외워둬야 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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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snobs ·
저도 여러번 읽고 마음에 새겨둔 문장입니다. 힘이 되곤 하는데, 자주 까먹는게 문제일 뿐이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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