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의 독서 에세이 [삐딱하고 경이로운 명작들 1]은 ‘정말 잘 읽었다!’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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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일주일 전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읽을만한 책이 없나 검색을 하던 중 우연히 발견하게 되어 바로 구매한 게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의 저자 김헌은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와 철학과를 졸업한 뒤 연세대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나 역시 최근 비교문학에 관심이 생겨서 관련 분야의 책을 몇 권 읽었고 최근 <비교문학의 도전>에 대한 독후감도 작성한 적이 있다. 내가 관심있는 분야를 전공하고 있는 저자여서 왠지 모를 친근감도 들었다. 비교문학, 국어국문학, 철학을 전공하여 인문학 전반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의 글이라서 그런지 내용이 튼실하고 알차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려한 글은 바로 김헌의 [삐딱하고 경이로운 명작들 1]과 같은 책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유명 작가의 책이나 겉표지가 예쁘고 화려한 책을 읽었다가 실망한 적이 많았는데 이 책은 내가 왜 지금까지 이런 보석같은 책을 모르고 있었나하는 후회가 들 정도로 마음에 쏙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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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저자가 다루고 있는 작가의 작품은 비톨트 곰브로비치의 소설, 밀란 쿤데라의 에세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등이다. 책을 좀 읽는다는 사람들은 한 번쯤 접해봤을, 혹은 들어봤을 작가들이지만 사실 나는 김헌의 독서 에세이를 읽기 전까지 밀란 쿤데라를 제외한 나머지 작가들은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은 위의 작품들에 대해 꼼꼼하고 세밀하게 분석하면서도 부드러운 에세이 형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서 마치 위의 작품들을 내가 직접 읽고 평론가의 안목을 갖게 된 기분마저 들었다. 먼저 비톨트 곰브로비치의 경우 해외에서는 유명한 작가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작가이다. 단적으로 그가 1953년부터 1961년부터 쓴 일기는 아직까지 한국에 번역되지 않았다. 또한 그에 대한 논문이나 연구도 한국에서는 굉장히 미비한 상태이다. 중요하면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작가인 비톨트 곰브로비치에 대해 저자는 매우 꼼꼼한 자료 조사를 통해 그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비톨트 곰브로비치가 자신의 정체성과 언어 및 세계 문단 내에서의 위치에 대해 끊임없이 의식하며 고민했던 작가라고 해석한다. 이러한 근거로 저자는 이 책의 12쪽에서 러시아와 프러시아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3국에 의한 3차 영토 분할로 1795년 폴란드 왕국이 멸망했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즉, 1904년에 태어난 곰브로비치에게 모국은 부재했던 것이다. 1918년 나라를 되찾을 때까지 폴란드는 123년 동안이나 지도에서 자취를 찾아볼 수 없었다. 따라서 유럽이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초기 시절에 국가의 독립성을 상실하는 아픔을 겪었다고 저자는 이 책에서 쓰고 있다. 그 외에도 이 책에서 저자는 폴란드가 어떤 나라인지, 그리폴란드와 곰브로비치의 관계에 대해 풍부한 배경지식을 풀어놓고 있기 때문에 비톨트 곰브로비치라는 생소한 작가에 대해, 그리고 그의 유니크한 작품 세계에 대해 한 층 더 깊이있는 시각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저자는 밀란 쿤데라의 에세이집들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내용은 밀란 쿤데라의 <만남>에 대한 저자의 에세이다. 저자는 밀란 쿤데라가 [만남]에서 소설뿐만 아니라 화가, 음악, 오페라 등에서도 이야기한다고 쓴다. 모두 ‘예술’의 범주 안에 속하지만 한 권의 에세이에 담겨있기엔 우연적이라는 의문도 덧붙인다. 물론 밀란 쿤데라는 ‘성찰과, 추억과, 실존적이고 미학적인 오랜 주제와, 라블레, 야나체크, 말라파르테 등과의 만남’이라는 문장이 에세이의 내용을 간단하게 제시하고 있긴 하지만 내용이 곧 목적은 아니라는 점을 예리하게 간파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만남들을 <만남>에 제시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저자는 이에 대한 이유를 밀란 쿤데라가 생각하는 ‘소설’에서 찾는다. 밀란 쿤데라는 본문에서 소설을 ‘소설 예술’로 표기한다는 점도 포착해낸다. 저자는 그가 소설이 ‘예술’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라는 주장을 한다. 아라공은 [농담]의 서문에서 소설에 대해 “소설은 빵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라는 찬사를 했다. 밀란 쿤데라는 아라공이 자신과 만나는 동안 ‘이 예술’을 옹호하도록 부추겼음을 밝혔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는 밀란 쿤데라가 소설이 예술이라는 점을 [농담]에서 어떻게 강조하고 있는지를 조목조목,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다음으로 이 책에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작중인물들에 대한 의미화 작업을 시도한다.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여성 작중인물들을 모두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어서 이 작품에 이렇게 많은 여성 작중인물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자의 꼼꼼한 독해력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령 저자는 [일리아스]의 여성 작중인물중의 한 사람인 헬레네의 경우 작품 내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질책하는 외로운 인물이라고 해석한다. 그녀는 미인이고 메넬라오스와 파리스의 사랑을 받지만 한편으로 전쟁을 불러일으킨 재앙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헬레네에 대한 평가는 상반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일리아스]는 헬레네를 앞세워 ‘여성 혹은 미인은 재앙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나쁘다’라는 단선적인 젠더 정체성을 부각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헬레네를 내세워서 미인과 사랑 그리고 전쟁이 분리될 수 없듯이 모든 것엔 양가적인 속성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또한 저자는 또 다른 여성 작중인물인 헤라가 작품 속에서 속임수를 쓰는 신으로 등장하며 윤리적으로 완전한 신이 아닌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쓴다. 헤라는 보통 아름다움과 권력을 추구하는 최고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리아스]에서의 헤라는 인간을 표상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사람들은 소설이나 에세이를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쉽게 읽히는 장르라고 해서 그 작품을 제대로, 깊이있게 읽었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김헌의 독서 에세이 <삐딱하고 경이로운 명작들 1>은 얄팍하게 독서를 하는 독자들에게 정통적인 문학 독서 방법을 제공하는 훌륭한 안내서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조만간 출간될 <삐딱하고 경이로운 명작들 2>도 무척이나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