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김흥규 교수의 <한국문학의 이해>를 읽었다. 제목만 보고 쉬운 책인 줄 알았지만 국어국문학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나에게 이 책은 독서에 상당한 시간이 요구되었다.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국어국문학을 비롯한 인문학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없다 못해 ‘왜 저런 공부를 하는걸까?’하고 한심한 눈으로 인문학 전공자를 대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이나 부끄럽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는 법학, 경제학 등이 매력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보니 인문학, 예술이 우리 삶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점차 들게 되었다. 하지만 인문학에 어떻게 접근해야하는지 전혀 감이오지 않던 중에 여러 책을 만나게 되었고, 지인의 추천에 의해 결국 김흥규의 <한국문학의 이해>까지 접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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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의 맨 첫 부분부터 “우리는 왜 한국문학을 읽고, 이야기하며, 연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도 이 물음은 무의미하다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의식하든 않든 한국문학이 과거로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읽고 이야기하며 정밀하게 이해한다는 일은 굳이 까닭을 묻기 이전에 하나의 주체적 필연성으로 우리에게 부과되는 과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오늘의 시대를 사는 한국인으로서 우리는 이 자연스러운 대답이 그 원칙적 타당성만큼 자명하게 받아들여지는지 확신하기 어려운 때가 더러 있음을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이 땅의 역사와 문화의 아들인 한국인이 한국문학을 진지한 관심사로 삼는다는 것은 대등한 평면에 병렬되어 있는 여러 문학 중에서 어떤 일부에 흥미를 느끼는 일과는 원천적으로 구별된다고 설명한다. 논리상으로 가정한 초월적 시각에서 본다면 한국문학은 물론 중국문학, 일본문학, 영문학, 불란서문학, 칠레문학 등과 마찬가지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개별문학의 하나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추상적인 일반개념으로서의 <사람>으로 존재하지 않고 일정한 언어, 역사, 문화에 의한 집단 속의 <나>와 <우리>로 존재한다고 저자는 쓴다. 이것은 곧 우리가 특정한 문학적 환경 속에서 이 세상과 대면하며 모국어를 통해 자신의 체험, 생각, 감정과 세계의 형상을 그려내도록 조건지어짐을 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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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저자는 문학은 객관적 경험의 영역이나 이 세계와 인간존재에 관한 탐구의 문제를 떠나서 존립하는 것이 아니라, 형상적 체험의 전체성을 통해 그것들에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그런 뜻에서 문학을 읽고 논하는 일은 그 자체가 과거와 오늘의 삶에 대한 적극적 인식을 추구하는 한 방식이자, 이 세계에 대해 실천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행위로서의 몫을 가진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한국>의 이해가 다른 영역의 인문 및 사회적 탐구와 더불어 절실한 과제로 주어지는 이유라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저자의 입장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하는 편이지만 여전히 문학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물론 나는 문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학문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철학, 사학과 달리 문학은 그 유용성에 대해서 많은 공격을 받고 또한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가령 우리는 ‘소설 쓰고 있네’라는 말을 자주 하거나 듣게 되는데 이는 ‘소설’이라는 문학의 한 장르에 대한 비하가 담긴 말이기도 하다. 문학, 더 나아가 예술의 한 분야로까지 이야기되는 소설이 한국에서 처한 현실은 ‘소설 쓰고 있네’라는 말이 잘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에도 많은 문학 독자들이 있고 소설을 열렬히 사랑하는 독자도 탄탄하게 있긴 하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한국문학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국에서 소위 잘 팔리고 잘 나가는 문학은 일본의 장르문학이다. 실제로 한국인 작가가 쓴 한국문학은 팔려나가는 부수가 손에 꼽을 정도이다. 고작 인기 작가 몇몇만이 한국인 작가의 선두에 서서 한국문학의 명맥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모두다 인문학의 중요성을 알고 있고, 국어국문학과 역시 인문학의 중심적인 학문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한국문학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그렇다면 저자의 설명을 계속 써보도록 하겠다. 15쪽에 의하면 한국문학은 기본적으로 <한민족이 각 시대의 역사적 생활공간에서 이루어 온 문학의 총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인종, 언어, 문화상으로 다양한 종족들이 혼합된 다민족국가의 경우와 달리 한국문학사의 흐름은 곧 민족사의 전개 과정과 일치한다고 한다. 그리고 구비문학, 국문문학, 한문문학이라는 세 가지 존재 양태 가운데서 구비문학과 한문문학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나는 특히 한문문학에 대해서 좀 더 관심있게 읽었다.
17쪽에 의하면 한문문학의 경우에는 한문이라는 표현수단으로 인하여 그 문화적 귀속의 문제가 심각하게 거듭 논의되었다고 한다. 이에 관한 여러 견해 가운데서 한문문학의 한국문학 귀속을 부인하는 논자들은 한문이 중국에서 온 글이라는 점을 결정적인 논거로 삼았다. 즉, <한국문학이란 한국인의 사상, 감정, 경험을 한국어로서 표현한 문학>인 바, 중국으로부터 온 글과 양식에 의하여 이루어진 문학을 우리문학으로 간주할 수는 업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견해는 일찍이 1910년대부터 형성되어 1920년대 말 무렵에 뚜렷하게 정식화되고, 1950년대까지의 우리문학 인식에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였다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22쪽에 의하면 한국문학은 우리 민족에 의해 면면히 이어져 온 문학적 창조와 그 나눔의 시간적 및 공간적 총체이므로, 수천 년에 걸치는 역사단계에서 각 시대마다 다양하게 나타난 표현방식(구비전승, 차자표기, 한문, 한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모두를 우리는 한국문학의 영역 안에 포괄하고자 한다고 한다.
이후의 내용은 한국문학에 대한 세부적인 지식이 들어있는데 나는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수확이 “왜 한국문학을 공부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인문학의 입지가 빠르게 작아지는 사회에서도 나는 여전히 인문학 예찬론자로서 한국문학을 사랑할 것이다.